여러분은 일상을 어떻게 채워가시나요?
영화를 보거나, 운동을 하거나, 혹은 침대에 기대어 게으름을 피우는 시간도 있겠죠.

우리가 좋아하는 것들, 반복해서 찾게 되는 무언가—이 모든 것이 곧 ‘취향’이라는 이름으로 우리를 설명합니다. 취향은 단순한 선호를 넘어, ‘나’라는 사람을 보여주는 또 하나의 언어니까요.

우리의 뉴스레터는 그런 취향을 나누기 위해 시작되었습니다. 두 에디터는 각자의 관심사를 깊이 즐기며 살아왔고, 이제 이곳에서 그 이야기들을 함께 풀어가려 합니다.

매거진 필사 는 한 편의 영화가 남기는 여운처럼, 취향을 소개하고, 이야기를 나누고, 함께 즐기기 위한 공간입니다. 하지만 이곳은 우리만의 공간이 아닙니다. 여러분의 취향이 더해질 때, 이 공간은 더욱 다채로워질 거예요. 좋아하는 영화, 음악, 브랜드—어떤 것이든 좋습니다.

여러분이 사랑하는 무언가를 알려주시면, 뉴스레터를 통해 함께 나누어볼까 합니다.

그리고 오늘, 우리가 나누고 싶은 이야기는 ‘취향’에 관한 영화입니다.
한 편의 영화가 스쳐 간 자리에는 무엇이 남을까요?
어쩌면, 그 흔적 속에서 또 다른 ‘나’를 발견할지도 모릅니다.

일본의 거장 오즈 야스지로가 빚어낸 걸작 <만춘>은 그가 추구하는 미학에 대한 모든 정수가 담겨 있는 이른바 '오즈 야스지로의 세계'의 시발점이기도 한데요. 여기서 '오즈 야스지로의 세계' 란 <만춘(1949)>에서 시작해 그의 유작 <꽁치의 맛(1962)>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에서 늘 한결같은 형식미가 도드라지는 감독 특유의 스토리텔링, 연출, 촬영, 연기 방식을 통틀어 일컫는 말입니다. 그중에서도 단연 돋보이는 것은 바로 '필로우 숏'이라는 연출 방식인데요. 이번 시간에는 오즈 야스지로의 영화에서 필로우 숏이 어떤 방식으로 작용되며, 또 그 방식이 왜 여전히 21세기에서도 끊임없이 회자되는지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위의 사진을 보면 자전거 두 대가 바닷가 앞의 모래밭에 정갈하게 세워져 있죠. 해당 숏이 등장하기 바로 직전까지의 상황을 간단하게만 묘사하자면, 영화의 주인공인 노리코가 좋아하는 남자와 함께 자전거를 타고 해안 길을 누비는 장면이 펼쳐집니다. 그리고 이내 그들은 잠시 휴식을 취하기 위해 자전거를 세워두고 그 근처에 걸터앉습니다. 당연히 그 뒤에는 묘한 분위기의 대화가 흐르게 되죠. 하지만 영화는 이내 둘의 대화를 끊고 위 사진과 같은 숏을 집어넣습니다. 일명 필로우 숏.

오즈 야스지로는 항상 영화에서 인물들의 감정이 필요 이상으로 초과되는 순간을 경계합니다. 대부분의 영화였다면 노리코의 고백 혹은 키스 등으로 과장되게 이어 나갔을 장면을, 그는 위와 같은 필로우 숏을 통해 감정을 환기시킵니다. 

필로우 숏의 정의는 '사물이나 풍경을 무심히 담아낸 인서트 장면' 정도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오즈 야스지로는 그저 풍경의 삽입 정도로만 끝날 수 있었던 필로우 숏을 인물의 감정과 엮어 기어코 그 이상의 효과를 건져냅니다. 그래서 오즈 야스지로의 영화는 항상 차분합니다. 감정이 고조되려는 찰나마다 탁월한 필로우 숏의 활용으로 극을 뻔한 멜로, 신파로부터 저 멀리 떼어놓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즈 야스지로의 영화에서는 끝내 장르가 아닌 일상이 남습니다. 샐러리맨의 일상, 딸을 시집보내려는 아버지의 마음, 부모님을 여윈 자식들의 슬픔 등이 우리들의 마음속에 잔잔히 사무칩니다.

갈수록 자극적인 도파민만 추구하는 사회 속에서, 잠시 오즈 야스지로의 <만춘>을 보며 마음의 여유를 되찾는 시간을 가지는 것은 어떨까요?